[미해군의 소형항공모함②] 줌왈트의 Sea Control Ship 밀리학개론


 미해군의 소형항공모함들에게 있어서 2차세계대전은 제대로 흥한 시기였습니다.(그것이 자의이든지 타의이든지 간에 말이지요.)

 이전글 링크: [미해군의 소형항공모함①] 2차세계대전시기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소형항공모함들은 암울한 시간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도 소형항공모함들은 몇 차례 부활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시기이며 가장 성공의 가능성이 높았던 시기가 1970년대 입니다.

(USS Antietam CVS-36)


◎ 2차세계대전이후의 상황

 한국전쟁 이후 미해군의 모든 항공모함들은 최신의 고급기술이 적용된 하이엔드(high-end) 함정이었습니다. 잇따른 함정들 모두 대형이며 고성능이었습니다. 이 신형 항공모함들이 활동하기 시작함에 따라 낡고 저성능의 Essex-class 항공모함들은 대잠전이라는 로우엔드(low-end) 임무로 전락했고, CVS로 재설계되었습니다.

 해군은 1968년 건조를 목표로 신형 호위항공모함의 획득을 다시 시도했습니다. 이 시기 국방장관은 이러한 유형의 함정을 위한 사업의 타당성이 없다고 결정했고, 자금을 지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1970년 해군은 함정건조를 지속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15척의 대형항공모함 체제를 유지하는 것 조차 어려워 졌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Elmo Zumwalt 제독은 1970년 7월 1일부로 미해군 참모총장에 임명됩니다.

 Zumwalt(줌왈트) 제독은 미국이 현재 심각한 군사적 위기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막대한 국방예산을 소비하고 있는 중이었고, 대통령과 의회는 소비에트의 지속적인 군사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증액을 거부했습니다. 미해군의 많은 수의 함정들은 다른 함정으로 대체되거나 수리를 필요로 하는 노후화된 함정들이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소비에트의 함대는 규모와 정교함에서 대단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절박하게 요구되는 신조함 건조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Zumwalt는 오래된 함정들의 퇴역을 가속화 했습니다.


(ADM Elmo Zumwalt)


◎ 하이-로우 콘셉트(High-Low concept)

 Zumwalt 제독은 미해군의 임무(해양에서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전투를 수행)에서부터 나온 해양통제(sea control)과  전력투사(power projection)이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미국의 경제는 거대한 해양능력을 갖추는 것을 필요로 하고, 미국의 정치적 관심과 책무는 바다 넘어의 해외에 군사력 영향력을 끼칠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미해군의 두 가지 임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모든 종류에 상업적, 군사적 교통로를 위해 열려있는 바다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은 sea control(해양통제)이라고 부른다. 또한 해외에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projection(전력투사)이라고 부른다...... 전력투사 임무는 해양통제 없이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Zumwalt는 당시 미해군이 전력투사임무에만 중점을 둔 전력구성을 가지고 있었고, 해양통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Zumwalt는 '하이-로우'라 불리는 개념의 계획과 획득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해군이 현대적인 능력과 저렴한 비용을 가진 새로운 함정들을 건조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새로운 함정들은 기존에 고성능 함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함정들은 저위협지역에서 작전하며, 고성능 함정들이 고위협지역에서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주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위해 Zumwalt가 제안한 함정들 중 한 유형이 바로 Sea Control Ship(SCS- 제해함 또는 해양통제함)이었습니다.


◎ Sea Control Ship(SCS)의 목적

 Sea Control Ship(SCS)으로 명칭된 '로우-엔드' 항공모함은 항로대 또는 해상교통로를 지키기 위해 설계된 작고, 소박한(?) 항공모함이었습니다. 해군은 대형항공모함의 비싼 가격으로 인해 제때 15~20척 이상의 대형항공모함을 획득할 수 없었습니다. 행정부의 목표는 14척의 대형항공모함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5~20척의 대형항공모함이 방어할 수 있는 해역보다 더 많은 해상교통로가 있었습니다. 해군은 예상되는 위협단계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을 조정해야만 했습니다.SCS는 낮은 공중위협구역에서 해상보급단, 상륙전단, 상선호송대, 대형항공모함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기동전대를 방어하는 것이었습니다. Price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차세계대전에서의 호위항공모함(CVE)처럼 SCS는 많은 저위협 공해상에서 필요한 방어능력을 제공해줄 충분한 숫자를 건조할 수 있는 함정이다."

 Zumwalt 제독은 1976년에 다음과 같이 글을 적었습니다.

"SCS은 1척의 핵추진 항공모함에 1/8 정도의 가격으로서, 1973년 당시기준으로 1억달러 정도였다. 평시에 SCS의 목적은 지중해나 서태평양 같이 위험한 해상지역에서 미국의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전방초계임무 및 현시효과) 그럼으로써 대형항공모함들은 후방으로 물러나 적의 선제공격 범위 밖에 배치시킬 수 있다.
 전시에 있어 이 위치는 반대가 된다. 크고 강력한 항공모함들은 순항미사일 범위 밖에 있는 적을 파괴하면서 고위협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하고, SCS는 대양 중간지점에서 활동한다."


(One of the earliest known concept drawings for the SCS, this artwork was featured in an article by LCDR Paul Mullane in the March 1972 issue of Naval Aviation News magazine as part of the USN’s “Year Of The Carrier” celebration.)


◎ Sea Control Ship(SCS)의 개념에 영향을 준 두가지 요소

 Sea Control Ship(SCS)의 개념은 당시에 두가지 요소에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하나는 대잠헬기이며, 다른 하나는 해리어 전투기였습니다.

-대잠헬기

 1950년대 동안 씨-레인(sea-lane)을 방어하기 위한 충분한 수의 CVS(호위항공모함)가 없었고, 1970년대 초반에는 어떠한 '로우-엔드' 항공모함도 없었습니다. 제안된 해결방안은 헬리곱터였습니다. 1950년대 초부터 소나를 탑재한 대형의 대잠헬기들은 잠수함을 탐색하고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실행가능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특히 대잠헬기들은 보호할 함정 주위에서 랜덤하게 액티브디핑소나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잠수함이 소나를 이용하여 구축함을 탐지/추적할 때, 대잠헬기는 예상치 못한 거리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잠수함 발사 어뢰는 공중의 헬기를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959년부터1969년에 이르는 10년 동안에, 소비에트의 잠수함 소음방지기술의 향상은 음향감시스템인 SOSUS와 같은 해군의 주요한 잠수함탐지수단을 무력화시켜며 위협이 되었습니다. 해군의 심각한 호위함 부족으로 인해 호송전술의 재도입이 논의되었습니다. 1969년 해군의 장기계획입안자들은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여 소형헬기항공모함을 제안했습니다. 제안은 새로운 헬기항모들을 건조하는 동안 퇴역한 호위항공모함(CVS)을 개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입안자들은 29척의 수량을 예상했습니다.(이는 1970년 중반에 VSS 콘셉트 계획으로까지 이어집니다.)

-Harrier VSTOL : SCS를 위한 새로운 능력

 2차세계대전 중 소형항공모함과 함재기를 운용한 영국의 경험은 미래전쟁에서도 상선의 소형항공갑판에서 운용가능한 항공기의 필요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교훈 중 하나는 통상의 해상항공기의 운용에 요구되는 복잡한 캐터펄드와 어레스팅 기어가 필요없는 단거리수직이착륙(VSTOL) 항공기 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항공기는 비싼 개조가 필요없는 대부분의 평갑판에서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항공기의 첫 제안은 1950년대에 있었습니다.

 1963년에 해리어의 앞선 버젼인 P.1127 Kestrel는 HMS Ark Royal에서 성공적으로 운용되었습니다. 첫 운용가능한 해리어는 1967년에 영국공군을 위해 생산되었고, 미해병대는 1971회계연도에 그것을 구매했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함상항공기는 함정과 같이 크기와 무게가 대단히 증가했습니다. 더불어 새로운 항공기들은 이전에 항상 요구되는 것이 아니였던 항공기사출 캐터펄트를 언제나 요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항공모함의 크기는 새로운 항공기를 운용가능하게 증가되었습니다. 소형의 해리어는 보통의 평갑판에서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캐터펄트가 없이 운용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1920년대부터 요구되어 왔던 어레스팅 기어조차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리어는 Sea Control Ship(SCS)와 같은 소형항공갑판을 가진 항공모함에서 운용하기에 매우 적합했습니다.


◎ Sea Control Ship(SCS)의 디자인

 Sea Control Ship(SCS)의 디자인은 저렴한 대잠전(ASW) 항공모함을 개발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더불어 전투기를 통한 점대공방어를 수행하고 취약한 수상함에 대한 제한적인 대수상전도 고려되었습니다. 설계는 프로젝트 진행 기간동안 수 차례 변경되었습니다.(배수량의 증가, 레이더위치의 조정, CIWS의 숫자 변화 등) 그러나 센터라인과 함미에 두 개의 함재기용 승강기를 갖춘 소형항공모함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최종적인 설계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U.S. Aircraft Carriers: 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by Norman Friedman)

Light displacement (tons): 9,773
Full load (tons): 13,736
LOA (ft-in): 610
LWL (ft-in): 585
Beam (WL/EXT): 80
Draft (full load) (ft-in): 21.62-0
Depth (ft-in): 67.5-0
SHP: 45,000
Speed (kts): 26 (24.5 sustained)
CIWS: 2

Aircraft (typical embarked):
3 AV-8A (Hawker Siddeley Harrier) 
2 LAMPS (Kaman SH-2 Seasprite) 
14 SH-3 (Sikorsky Sea King)

Flight deck dimensions (ft):545x105

Hanger height (ft): 19
Elevators (ft): 1 60 x 30 and 1 35 x 50
Capacity (lbs.): 60,000

JP-5 (tons):  950
AvOrd (tons): 180
LM 2500 GT: 2
SSG (GT): 3 2500

Complement
Ship (officers/ratings): 76/624
Aviation: ?



(USS Guam LPH-9 1970's)


◎ Interim Sea Control Ship(ISCS) : SCS의 과도기적 시험함정

 Zumwalt 제독은 SCS의 프로토-타입으로서 2차세계대전시기에 취역한 Bay-class CVE(호위항공모함)을 7300만~1억1500만 달러의 비용들여 재취역시키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의회로부터 거부당했습니다. 대신에 개념 프로젝트의 증명을 위한 ISCS(Interim Sea Control Ship)가 1971년에 예산을 배정받았습니다. USS Guam(LPH-9)의 선체는 상상되던 SCS와 가장 유사했기 때문에 시험함으로서 선택되어졌습니다. 포츠머스해군조선소에서 4개월의 개조를 거친 후 USS Guam은 함대에 재편입되었습니다. USS Guam의 개조에는 소나부이데이터처리체계와 향상된 항공기정비시설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함정에는 SH-3 Sea King 헬기 4대, SH-2 Seasprite 헬기 2대, 미해병대로부터 임대한 AV-8A Harrier 전투기 3대가 탑재되었습니다. USS Guam은 다양한 상황에서 SCS 콘셉트를 시험하기위해 'TG 27.2'라 불린 특별기동전대에 USS McDonnell(FF-1043)과 USS McCandless(FF-1084)와 같이 편성되었습니다. ISCS 프로젝트는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시험평가임무가 종료된 이후 USS Guam은 상륙임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ISCS 프로젝트의 결과는 대체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작전시험평가부대의 지휘관은 ISCS의 개념을 테스트했고, ISCS가 전시에 예상되는 것보다 더 가혹한 상황 하에서 그 능력을 입증받았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양측면에 대잠전 소나부이 방어망을 형성하고 항공기를 통한 대수상초계를 동시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또한 ISCS는 14대의 SH-3 Sea King 대잠헬기를 완전히 지원할 수 있었다.(추가로 3대의 AV-8A와 4대의 LAMPS를 포함하여)"


(USS Guam LPH-9 1970's)


◎ Sea Control Ship(SCS) 프로젝트의 사망

 SCS를 위한 2940만 달러의 첫 자금요청이 1974년 예산에 있었습니다. 계획은 75년 1척, 76년 3척 그리고 다음 2년동안 연간 2척의 함정을 요청하여 총 8척의 SCS를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미하원 세출위원회의 위원장인 Ralph Preston은 SCS에 반대했고 하원의원들을 동요시켰습니다. 이 계획에 반대한 Mahon 의장은 '하원은 SCS를 위한 어떠한 자금도 승인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McClellan 과 Young을 포함한 상원 세출위원회의 몇몇 상원의원들은 SCS와 '하이-로우' 콘셉트에 적극 찬성했고, 상원은 2940만 달러의 자금을 승인했습니다. 회의에서 미의회는 자금의 승인을 유지했지만, 미회계감사원(GAO)의 보고서가 제출될 때까지 이 자금을 동결시키는데 동의했습니다. Zumwalt 제독이 전역한 후 제출된 보고서는 이 계획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 .....의회는 SCS의 제한된 크기와, 능력 그리고 속도를 문제삼아 예산승인을 거부했다."

 SCS를 반대하는 정치적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우선 영향력있는 버지니아의 정치단체들은 이 프로젝트를 반대했는데, 이는 비핵추진 소형항공모함 프로젝트였던 SCS의 건조가 버지니아의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서 였습니다.(당시 뉴포트 뉴스 조선소만이 핵추진 대형항공모함을 건조할 수 있었는데, 이는 버지니아주에게 항공모함의 건조에 대한 독점적인 이익을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해군의 예산 전체를 감소시키기를 원했던 진보주의진영들 역시 SCS 프로젝트를 반대했습니다. 

 SCS에 대한 비난과 반대는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미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의 아버지' 또는 '핵추진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던 Rickover 제독은 미해군이 미래에 완전한 핵추진 함정을 갖출 것이라고 상상했기 때문에 비핵추진 소형항공모함인 SCS에 단호하게 반대했습니다. 또한 해군항공대에 기반을 둔 제독들은 SCS가 대형항공모함을 대체할 의도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SCS와 VSTOL 전투기를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미해군의 수상전 그룹은 SCS의 1축추진체계(single-shaft) 디자인을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하이-로우 콘셉트의 반대자들 몇몇은 "Zumwalt가 소비에트의 최일선급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최일선급 함정들을 획득하지 않는다"고 비난했습니다.(사실 Zumwalt는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3번째 함정인 칼 빈슨 항공모함의 획득에 적극적인 지지입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미해군내에서 단지 소수의 지지자들만이 SCS를 찬성했습니다.

 이후 1975년도예산안에서 SCS를 위한 1억4300만 달러의 자금이 재요청되었지만 거부되었습니다. 대신에 1974년도 예산안에서 동결된 2940만 달러의 자금이 대형항공모함을 대체하는 저비용 통상항공모함에 관한 연구자금으로 재배치되었습니다. 그리고 1976년예산안에서 SCS를 위한 자금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Elmo Zumwalt 해군참모총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Sea Control Ship(SCS)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후 1977년에 SCS의 디자인은 몇가지 개량을 거쳐 스페인에 팔렸고, 이는 스페인의 경항공모함인 Principe de Asturias (R-11)를 건조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Principe de Asturias R-11)




P.S) 저렴한 가격과 적당한 성능을 가진 '로우-엔드' 함정의 획득을 강하게 주장했고 실행에 옮겨나갔던 줌왈트 제독이 사후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미해군 차세대 구축함의 초도함인 USS Zumwalt (DDG-1000)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실까 궁금하네요.(이 함정 대당 가격이 33억달러가 예상된다고 하던데 말이지요.) 고인의 생전유지에 역행한 함정에 그의 이름을 붙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SCS의 사망에 따른 사후경련(?)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는 VSS concept의 대잠전항공모함은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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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존다리안 2012/02/16 21:36 # 답글

    줌월트 제독의 이름은 지금 생긴것부터가
    괴악한 신형 전투함 이름으로 쓰이지요
    아주 레일건(일각에서는 강철미사일로
    도 불리는....) 탑재도 연구중입니다
  • 식빵스러움 2012/02/16 22:06 #

    'Low-end' 함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줌왈트 제독과 'High-end' 함정의 선두주자 USS 줌왈트....먼가 네이밍센스가 어긋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ㅋ
  • 존다리안 2012/02/16 22:25 #

    로우엔드의 대표주자라면 올리버 하자드 페리급인데 왜 현재 미 해군은 저강도 위
    협에 이런 돈 덜들면서 탄력성 있게 대응
    할 수 있는 물건을 또 만들려고 하지 않는
    건지...
  • 식빵스러움 2012/02/16 22:30 #

    만든다고해서 나온 녀석이 LCS 인지라...,(깝깝)
  • 누군가의친구 2012/02/17 02:02 # 답글

    그래도 줌왈트 제독도 나름 업적이 있는 분이시고 말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참전 및 최연소 해군 대장에 흑인및 여성 차별 철폐, 젊은 수병을 위한 프로그램을 통한 복지개선등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미 클린턴 행정부때 함명으로 쓸것으로 지정한 상태라서 말이죠.
  • 식빵스러움 2012/02/17 17:21 #

    네.. 미국에서 최연소로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되신 분이지요.(임명당시 49살!!이였던 것으로..)

    젊은만큼 이것저것 개혁적인 프로그램을 진행시켰지만, 그만큼 해군내에서도 반대가 심했지요.
  • 모튼 2012/02/17 11:43 # 답글

    제해함...확실히 작고, 저렴하고 좋아보이는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무조건 큰 거 좋아하는 건 똑같은 거 같습니다.
  • 식빵스러움 2012/02/17 17:28 #

    줌왈트 제독의 로우-엔드 함정 시리즈 중 가장 흥한 것은 역시 올리버 하자드 페리급 프리깃이지요...
    제해함(SCS)이 페리급 처럼 실제로 다수 건조되었다면, 지금쯤 각국이 이 함정을 중고 항공모함으로 굴리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ㅋㅋ
  • band 2012/02/17 14:43 # 삭제 답글

    대잠핼기 2대씩 날리는 스플/페리느님을 찍어댔고...헤리어의 방공능력은 암람이 나올때까지는 뇨롱?...이었으니 처음부터 함자체의 한계가 너무 나왔다는개 문제라면 문제갰지요......

    해병대도 항모굴릴꼬얌~~하면서 이번에 와스프(타라와 펠렐리우였던가..?)에다가 해리어만 얹어서 운영해봤었다고 하니까요...근미래에 다시 부각될 수도 있갰죠.

  • 식빵스러움 2012/02/17 17:34 #

    SCS에서 헤리어의 존재는 과도기적 기체이고, 차후에 탑재하려고 했던 것은 미국에서 1972년부터 개발을 진행한 초음속 VTOL기인 Rockwell XFV-12 였지요. 물론 이것도 개발실패...(그전에 이미 SCS의 획득실패가 결정된 상황이였지만요.)
  • 긁적 2012/02/17 23:09 # 답글

    어..... 읽으면서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 높으신 분들은 다르게 생각하셨나 보네요(....)

    ps : 저글링 없이 울트라만 뽑으면 안 된다능!!!
  • 식빵스러움 2012/02/17 23:31 #

    반대측 생각은 그럴돈으로 울트라 하나 더 뽑자!! 였지요...
    SCS가 니미츠급 항모를 대신할 수는 없어도 보완은 할 수 있는 존재였는데,(물론 실제 3차대전이 안일어났으니 누가 옳은 소리를 한 것인지 입증은 안되었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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