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K 울산함급] 건조 및 진수/인수식 (3) 밀리학개론

 지난번에 쓴 글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2012년을 맞이하여 33살이 된 FFK 울산함의 건조과정부터 진수/인수식까지의 내용을  적으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전글) [FFK 울산함급] 건조사업의 시작 (1)

            [FFK 울산함급] 기본설계 과정 (2)
 


◎상세설계 및 건조 계획서

 기본설계가 끝나고 1978년 4월 27일 JJMA팀, 5월 1일 현대팀이 각각 미국 및 울산 조선소로 복귀하고 해군만이 남아서 건조 사양서를 작성, 9월 29일(토)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이를 위하여 10여명의 장교들이 참여 약 6개월 여의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함정 건조사업의 특성 때문이었다. 특히 건조비를 산출함에 있어서 정산기준이 될 각종 수수료와 제 잡비 그리고 이윤 등에 적용할 요율을 결정하는데 해군과 현대의 의견이 틀려 건조비 차액이 당시 화폐가치 기준으로 무려 1,600억원의 차이가 났다. 그러나 제4차 율곡 기본계획에 반영된 예산을 초과할 수 없어 해군 안을 기준으로 하여 사업계획서를 완성하였다. 더욱이 힘들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대형함정 건조 사업이라 해군본부와 국방부내에 이 사업에 관련된 약 20여개 부서의 부서장들, 국방부 율곡 투자 조정실, 10인 위원회, 장관, 국무총리, 청와대 5인 위원회 등 대통령의 승인을 얻는데 52명의 합의서명이 필요했다. 재가서 내용은 중요장비 구입비 160억원, 상세 설계 및 건조비 108억원, 집행 방법은 사후 정산제였다.



 ◎건조 감독관의 업무

 1978년 10월 28일 해군과 현대간에 571사업의 상세 설계 및 건조 계약이 체결되었다. 11월 2일 해군 감독관실을 현대 조선소로 이동했다. 해군들은 학생호, 알미늄 보트, PK정 등의 건조 감독 업무를 수행하면서 생산설계 과정과 물량 산출, 자재검사 업무 등에 익숙하였고 특히 건조 사양서를 작성하면서 감독 업무의 주요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건조 계약이 정산제로 됨으로써 감독관의 업무가 대폭 증가하여 생산 공정계획부터 인력투입, 자재의 품질과 시공 검사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현대 측에서는 자기들이 하는 일에 간섭한다고 특수선 사업부의 책임자부터 반발하고 나왔다. 현대의 공정 계획은 선체 Block을 먼저 탑재한 후 의장 작업을 하는 계획이었다. 고속정을 건조하면서 많이 경험한 사항으로 이런 계획은 수긍할 수 없는 공법이었다. 박판으로 된 선체에 페인트 부착이 부실할 때 함정의 수명은 3분의 1로 단축된다. 한 예로서 당시 영국해군의 5,500톤 Hampshire호 건조시, 기관실 Buttom area에 도장이 잘못되어 건조된 지 15년만에 각종 장비 지지대와 선체의 용접 부분의 부식이 심하여 폐선된 일이 있었다. 그 후로 군함 건조시 화기작업이 끝난 후 하지 처리와 도장작업을 하는 공법은 군함건조에 있어서 필수적인 절차로서 건조 사양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선체 Block에 설치될 장비들의 지지대, 모든 개구의 Coaming 용접과 굴곡된 부분의 곡직 작업이 끝나고 감독관의 검사가 끝난 다음에 도장(Painting) 작업에 착수하도록 공정 계획의 수정을 요구했더니 그 반응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못하겠으면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거냐?"며 다그쳐, 시작부터 이 사업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그후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확대되어 1979년 8월 현대의 특수선 사업부 총책임자가 교체되는 데까지 확대되고 말았다. 그 상황이 나의 과업일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979년 8월 28일 출근하니 AS-3와 AD-3 Block이 대조립장에서 도장공장에 운반되어 있었다. 선체에 붙을 품목이 67종인데 그 중 3종만 붙이고 도장을 하겠다 기에 화기작업이 끝난 후 도장작업을 시작할 것을 요청했다. 감속기 Sumptank 내부에 완전 도장을 해놓고는 주위 Sanding을 하면서 그대로 방치하여 Tank내에 모래가 수북히 쌓이게 해 놓았다. Sanding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감독 보좌관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그냥 Sanding을 계속 문제가 심각해졌다. 기관실 side는 하지처리에 대한 검사도 받지 않고 painting함.
 -8월 29일 B-2 Block(보기실) sanding 검사결과, 불량하여 다시 sanding 요청함.
 -8월 30일 구름, 비, 맑음. AS-3 와 AD-3 Block, S-1 Block 하지 처리 검사도 받지 않고 painting. 조선소치고는 별난 조선소가 다 있다. 이춘림 사장께 공문을 보내다. 그 내용은 특수선 사업 본부장을 조선을 전공하고 선박 건조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9월 7일까지 교체 요망하고, 불가시는 감독 업무를 중단하고 상부에 보고하겠다는 것이었다.
 -8월 31일(금요일). 공기지연 사유를 정리하여 현대에 공문으로 발송함. 심 부사장이 사무실을 찾아와서 약 2시간에 걸쳐 해기부의 현황에 대하여 이야기함. 엇그제 보낸 감독관의 요구사항(본부장 교체문제)을 수용할 수 없다기에 안 들어주는 것은 현대의 권한에 속하는 문제라 왈가왈부하지 않겠고, 나는 9월 7일 이후에는 현직을 떠난다는 것을 강조함.
 -9월 1일 토요일. 어제 painting으르 중지하겠다고 철썩 같이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을 어기고 AB-1 Block sanding을 해버렸다. 갈수록 태산이다. 11시경 심 부사장이 이 상무를 데리고 사무실을 내방. 이 상무 자필로 된 사과문을 내놓았다. 기가 막혀 그냥 가지고 가라고 했다.
 -9월 3일 월요일. 빗방울이 떨어지는데도 painting. 이 상무 임의로 토요일, 일요일 sanding 작업을 시켰다.
 -9월 6일 군수부장 조선소 방문. 이 상무 건에 대하여 논의함. 부장의 질문은 1)설계부장을 바꾼후 실적은? 2)이 상무가 사과문을 쓴 후에도 painting을 했나? 3)현대에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앞으로 잘 해보겠다고 할 때 엄 대령의 의도는? 3가지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함. 1)설계부장 교체 후 설계 진척은 잘되고 있다. 2)계속 painting을 했다. 3)아무리 현대가 잘못을 사과하고 잘하겠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유는 향후 해군이 조함 사업을 함에 있어서 감독관들의 위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9월7일 금요일. 군수부장은 이 상무를 교체해줄 때 다른 문제는 좀더 너그럽게 처리하도록 한다는 다짐을 받고 상경함.

 1979년 9월 16일 이 상무 대신 홍석의 전무가 특수선 사업을 담당함으로서 그 동안의 조선소와 감독관실의 불화는 일단락 되었었다. 그러나 해군 감독관 실은 해군 함정을 건조해 본 경험이 없는 현대에서 상선건조 감독관처럼 검사 신청을 받으면 검사 후 그 결과를 통보하는 식의 업무처리는 할 수가 없었다. 특히 건조비를 정산키로 된 계약조건은 설계, 자재구매, 건조공정, 투입인력에 이르기까지 건조비와 연동시켜 감독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이를 위하여 감독관 보좌관들이 기본, 무장, 추진, 전기, 전자통신, 주거설비 등의 업무를 분담하고 각 팀이 자기들 분야를 설계, 시공, 검사까지 책임을 지도록 하고, 도면승인이나 인력투입 등 어려운 점이 있을 때는 나에게 보고하는 관리체제를 운용했다. 이런 체제에 대하여 현대는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해군의 입장에서는 사후 정산이라는 계약조건 때문에 부득이한 조치였다. 특히 Mast 설계, Sonar dome 설치도, 탄약 장진실, 거주실 배치, 조타실 기기 배치도, 후부 타기실, 함정 Decoration 등의 설계를 해군이 담당하고 애매한 부분은 진해에 정박해 있는 함정을 견학, 해결하곤 했다.




 ◎진수식

 1980년 4월 8일 한국형 구축함의 진수식이 있었다. 최규하 대통령을 모시고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대형 전투함 진수식이었다. 당시 해군이 보유한 구축함의 선명은 대도시 이름을 따서 붙였던 관례대로 이 배의 이름을 '울산함'이라고 명명했다. 그 날로부터 반년 전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은 이 사업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 사업에 쏟은 관심과 기대는 대단했다. 기본설계가 끝나기도 전에 이 함정의 모형을 청와대에 전시해 놓고 출입 기자들과 내빈들에게 한국형 구축함이라고 소개하곤 했던 그 모형을 준비했던 기억은 그날 따라 나의 기분을 더욱 위축시켰다. 식이 끝나고 현대 영빈관에서 점심식사가 있었는데 최 대통령이 식장을 떠나고 그날의 Host인 주영복 국방장관의 차가 도착, 장관이 문을 열고 타려고 하는데 현대사장이 주 장관의 상의를 잡아채면서 "당신이 뭐야! 비켜요!"라고 고함을 지르니 장관이 기가 차서 사장을 쳐다보는데 그 옆에 있던 내가 뛰어들어 장관님이라고 설명을 해서 서로 웃고 말았지만, 그날 행사의 준비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촌극이었다.




 ◎건조자 시운전

 군함을 건조하는 과정 중에서 가장 바쁘고 힘들때가 건조자 시운전 기간이다. 배에 설치된 모든 장비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에서 모든 기기가 담당자들의 욕심대로 순수히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비행기와 함정까지 동원되어야 하므로 일기까지 한 몫을 한다. 본 사업을 추진할 때는 어느 정도였을까? 그 일면을 나의 일지에 기록된 대로 옮긴다.

 1980년 11월 23일(일) 구름. Builder's Sea Trial 시작. 바다는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계획에 의거 Diesel engine remote pitch setting을 시도하였으나 14시까지 실패. 할 수 없이 Gas turbine mode starting 시험. G/T full power 시험도중 AMR(Auxiliary Machinary Room)에 배치된 작업자가 F.O booster pump를 폐쇄. MCR(Machinary Control Room)에서는 갑자기 기름이 없다고 아우성. Gas generator가 관성에 의해서 돌고 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달려가 Booster pump를 다시 시동하니 Gas generator 회전수가 충분치 못하여(2,000 rpm) 흡입 공기가 미흡한데다 갑자기 연료를 분사하니 MCR에서는 배기가스 온도가 상승. Gas turbine에 문제가 생겼다고 아수성. 다시 시험을 계속하는데 이번에는 감속기어 Bearing 온도가 너무 상승한다고 Fire pump를 돌려 Cooler로 해수를 보충 공급하는데 그래도 Gear driven 해수 pump의 출구 측 압력은 2.5 bar 규정대로 올라가는데 Stainer와 Control valve의 Presure drop이 너무나 많아 Cooling effect가 부족한 문제점 대두. 그러는 동안에 Fire pump 해수라인에 Reducing valve가 고장. 갑자기 폭죽을 터트리는 것 같은 폭음이 나니 MCR에서는 모든 엔진을 끄고 놀래서 우왕좌왕 하는데도 소리는 계속 나다. 그러자 MAAG(감속기어 공급회사)에서 온 Mr. White는 life jacket를 들고는 MCR을 뛰어나가면서 "Fire!" 라고 외치다. 그런데 그 옆에 있던 송 직장은 덩달아 "불이야!" 하고 외쳐 MCR에서는 순간적으로 대소동이 일어났다. 알고 보니 그놈의 Reducing valve의 disc가 붙었다 떨어졌다하는 진동이 일어나는 것이 판명 됨. 오후부터는 파도가 다소 가라앉아 Gas turbine의 회전수를 2,500 rpm까지 올려보다.




 ◎인수 시운전

 1980년 12월 19일부터 24일까지 매일 9시에 출항하여 20시에 귀항하면서 인수 시운전을 실시 하였다. 다행히 기상 상태가 좋아서 순조로운 시운전이 가능했다. 사격 통제 장비시험을 하기 위해 공군의 팬텀기(F-4)와 해군의 PKM정과 해상 이동 목표물 예인선 등이 출동. 평상시 해군이 실시하는 해상 사격 훈련을 방불케 했다. 각 포의 성능시험은 Fire control system과 완변한 Setting이 안된 상태라 명중률 시험은 보류한 채 자동 탄약 장진 계통의 작동시험과 발사 성능시험으로 76mm 포는 10발씩, 30mm포는 20발씩, 폭뢰(Depth Charge)는 8발을 발사한 결과 작동에 이상이 없었다. 추진계통은 G/T mode와 Diesel engine mode가 각 Engine의 속력에 따라 자동으로 교체 작동되는 시험부터 시작. 속력시험까지 별 이상이 없이 끝낸 결과 디젤엔진으로 23.8 노트, 개스터빈으로 36.2 노트의 속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격 및 속력시험을 통하여 이 배의 Stability, Vibration, Structure rigidity, Seaworthiness, Trim, Heeling, Wake pattern 등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항해 장비 시험으로 최고 속력 시 Rudder Angle과 Dynamic vibration, 작동 Motor 용량 등을 시험한 결과 양호 하였다. 특히 Motor 용량을 선정하면서 현대가 95KW Motor를 구매하려는 것을 65KW Motor로 줄이면서 현대가 그 책임소재를 들고 나와 각서까지 써주면서 무게와 예산을 절감했었는데 시운전 결과 Motor 용량이 적합함이 판명되어 걱정하던 문제가 풀렸다.

 12월 30일(화) 역사적인 날이었다. 5000년 역사상 처음 우리 힘으로 구축함을 건조하여 인수를 받는 날이다. 날씨는 무엇이 못마땅한지 아침부터 바람이 쌩쌩 불고 영하 5도. 참모총장, 함대사령관 및 관계 참모진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인수식을 무사히 마쳤다. 참모총장을 위시하여 참석자 모두 기분이 좋았다. 만 4년간 참으로 힘든 일을 완성했다. 1981년 1월 26일 11시 30분 울산함은 진해를 향해 출항했다.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감격의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출처-'1970년대 해군의 조함사업' 엄도재 해군준장(전) )




P.S) 울산함....이제 그만 쉴 때도 되었죠. 아니면 함정은 역시 바다에 있을 때가 가장 알흠다우니 uss constitution 처럼 보존하는 것도 좋을 것도 같은데....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당시 울산함급/동해급/포항급의 FF, PCC를 대량건조 해야만 했던 주된 이유가 북한의 해상침투에 대비하기 위함이였다는 것(그 중 특히 간첩선 등)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이러한 목적의 FF/PCC는 그만 건조하길 바랍니다. 물론 이미 FFX를 건조하고 있으니 버스 떠나간 다음에 하는 애기이지만...





덧글

  • StarSeeker 2012/01/20 08:25 # 답글

    아... 박통도 군함모형 가지고 하앍거렸구나....(.....)

    노통도 214모형과 FA-50모형가지고 놀았다는 말이 있긴 했지만.... (....)
  • 식빵스러움 2012/01/20 11:20 #

    밀통령의 계보를 다음 대통령이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현재 대통령님은 안티-밀덕 같고요...)
  • 포항시민 2012/01/20 08:44 # 답글

    문제는 FF와 PCC 전력을 DDH급으로 대체하면 경비구역 커버에 큰 차질이 생기죠.
  • 식빵스러움 2012/01/20 11:27 #

    프리깃을 현재 계획대로 20여척 건조한다면 성능이 부족하거나 건조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접적해역인 서해 NLL에서는 현재와 같은 초계임무가 필요해 보이지만, 그외 다른 구역에서는 해상초계기 혹은 장기체공이 가능한 UAV를 활용하여 평시에 해역을 초계하고 이상징후 발생시 함정이 기동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전통적인 3직제를 고집하면서 함정에 의한 초계를 주로 한다면 함정소요를 현재 예산으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Low-end급 연안전력은 한반도에 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물론 개인적인 바램..)
  • 포항시민 2012/01/20 13:51 #

    개인적 생각에는 UAV나 초계기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야간이라든지 항공기 못뜨는 기상 일경우에는 틈이 너무 많고 항공기 같은경우에는 오래 체류할수도 없는 노릇으로 보여서 말입니다.
    이상 징후 발생시 함정 기동 같은 경우에는 배 살리고 작전구역 까지 가는시간 생각하면 초도 대응이 너무 늦어지는 수준이 아니고 벌써 할꺼 다하고 빠질 정도의 시간이라서 곤란하다고 봅니다.
    해군예산도 문제지만 아마 인력이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FF,PCC 전력 DDH급으로 바꾸면 퇴역한 배 PCC1,2차선 인원을 전력에 포함시켜도 한 16척정도 굴릴 인원 밖에 안나옵니다. 문제는 16척으로 아무리 해도 기존 30여척이 도는 경비구역 커버하는데는 굉장히 무리죠. 문제는 해군 인원을 늘릴려면 공군이나 육군 인원은 그 만큼 감축해야 된다는 것도 한 몫하고요.
  • 식빵스러움 2012/01/20 15:59 #

    예산과 인력이 모자르다면 어떠한 식으로든 해결책이 나와야 되겠지요. 그래서 연안/대양전력을 구지 구분 짓는 해군의 전력증강 구상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이미 대체소요가 아닌 신규소요를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이 해군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
  • band 2012/01/21 12:08 # 삭제

    해상감시체계의 강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지만 항공전력은 어짜피 항공전력...1차선에서 대치하는 현장상황에서의 요구가 절대적이기때문에 전폭적으로 줄이기는 수는 없습니다. 달래 몸통박치기하는개 아니니까요. 그나마 해경전력의 강화로 해군에만 의지하던 부분이 줄어들은 상황이니 현시점의 20여쳑대체가 적절한 대체라고 볼 수 있갰습니다.

    FF/PCC/FFX가 필요없어질려면 두가지 방법밖에 없지요.....북한이 지도상에서 사라지던가...통일하던가......
  • 식빵스러움 2012/01/21 13:31 #

    북한 개객끼!! 주변국만 생각해도 암울한테 대북한 연안전력까지 신경써야되니....ㅡㅡ;;
  • JOSH 2012/01/20 09:44 # 답글

    무장이 안 달린 상태에서 보니까 저 배가 저리 작은 배였나... 싶네요...
    최근 우리나라가 만들어내는 구축함들과 비교해보면 참 30년 격세지감이.... T_T
  • 식빵스러움 2012/01/20 11:17 #

    기준배수량이 1500톤이니 프리깃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지요...

    30년전을 돌아보면 많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함정 설계/건조에 있어 부족한 점이 아직도 많다는 것 역시 사실이고 가야할 길이 멀어보입니다..
  • shaind 2012/01/20 10:56 # 답글

    현대 사장이 국방장관 멱살을 ㄷㄷㄷ
  • 식빵스러움 2012/01/20 11:01 #

    멱살잡이의 위엄!! 남산으로 안끌려간게 다행...ㅋ
  • shaind 2012/01/20 11:28 #

    80년대면 아직 군사정권 문화에 젖어있던 시절이고 별 좀 달았다 하면 아주 폼 잡고 다니던 시절인데 그냥 별도 아니고 국방부 장관 멱살을 잡았다니 패기가 쩌는군요.
  • BigTrain 2012/01/21 09:52 # 답글

    HMS 햄프셔의 조기퇴역에 저런 속사정이 있었네요. 해체 후 동류전환용으로 쓰였다길래 왜 저랬나 싶었는데.. ( http://bit.ly/A2OUiN , http://www.geocities.ws/datafuser/rnaaw.html#5 )
  • 식빵스러움 2012/01/21 12:28 #

    건조과정에서 hull 자체의 문제가 진수후 15년만에 퇴역이라는 안타까운 결과를.....(현대 말 믿고 했다가 울산함도 같은 길을 걸을뻔 했지요. 천만다행~)
  • 모튼 2012/01/21 13:01 # 답글

    그 시절에 국산 전투함 건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절실히 드러나네요...

    현재 나오는 인천급이 울산급과 포항급을 잘 대체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잠전 성능이 월등하게 좋아졌다는데요. 한국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정 수 이상의 작고 저렴한 전투함은 필요하니까요.
  • 식빵스러움 2012/01/21 13:34 #

    FFX Batch-1 인천급도 잘되고, 현재 기본설계 중인 FFX Batch-2 도 이번에는 좀 괜춘하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워낙 밀덕세계에선 인천급이 욕을 먹고 다니는지라...불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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