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K울산함급] 건조사업의 시작 (1) 밀리학개론


 한국해군이 처음으로 건조한 전투함인 FFK 울산함의 설계 및 건조에 관한 글입니다. 이후에 건조되었던 PCC 포항함/동해함 등은 폭풍퇴역 중임에도 불구하고, 1980년 4월 8일에 진수식을 갖고 30년 이상 현역으로 뛰고 계신 노장 울산함을 생각하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글을 시작..

 출처는 대한조선학회지에 실린 '1970년대 해군의 조함사업' 이라는 제목으로 FFK의 설계, 건조, 전력화과정 전반에 참여하셨던 '엄도재 해군준장(전역)'께서 기고하신 글입니다. 이 중 FFK와 관련된 부분을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글이 좀 긴 관계로 1~2(혹은 3)편으로 나누어서 옮깁니다.(사실 그것보단 한번에 다 쓰기가 손이 아파서요.ㅋ)




한국형 구축함 개발(율곡 571사업)


1. 대통령의 지시
 
 1975년 7월 박정희 대통령은 해군 참모총장에게 구축함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여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의 여건에서 구축함 개발을 논하는 것만으로도 해군수뇌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해군은 그때까지도 장병의 월급과 의식주 및 유류를 제외하고는 미국의 군사비 지원을 받아 군을 운영하는 처지라, 국가 재정상 대형 전투함정을 건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함정 건조를 위한 작전소요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고 그 소요를 만족하는 함정을 설계할 수 있는 기술 인력도 양성해 놓지 못한 상태였다. 국내대학에 위탁교육이나 해외 유학과정을 함정을 운용할 요원확보 차원을 넘지 못했다.
 
 이런 여건에서 대통령의 지시에 대하여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난감한 처지였다. 1970년까지 황무지였던 해군의 함정 설계 기술은 71년 학생호, FRP보트와 73년 알미늄 보트(PB), 74년 PK 등을 설계하면서 일취월장하여 고속정 설계 기술은 전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전투함정 설계 경험은 전무했다. 고속정을 설계할 수 있으면 대형함정 설계는 대동소리하지만 그 일의 양이 방대하고 대함, 대공, 대 잠수함 전술, 그리고 해군 특유의 군율과 관습을 알아야 한다. 대형 전투 함정에서 성장한 해군 지휘부로서는 고속정을 설계 건조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 복잡한 전투함정읋 해군이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기술이 없어 개발할 수 없다고 보고 할 수는 없었다.

 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데 현대가 나섰다. 설계만 있으면 구축함을 건조할 수 있고 설계는 외국에서 구입해 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해군은 다른 선택이 없었다. 건조코자 하는 함정의 성능을 결정하는 작전요소, 설계능력, 시공능력, 설비능력, 개발기간 등 중요 사항들은 검토조차 하지 않고 현대중공업이 제시하는 방안, 즉 설계는 외국에서 구입하고 건조는 조선소에서 할 수 있다는데 초점을 맞추어 개발할 수 있다고 청와대에 보고하였다.




2. 외국 설계 용역회사 실태조사

 1975년 8월 해군은 현대와 합동으로 군함 설계 용역업체 조사에 착수하였다. 영국의 VOSPER, 미국의 GIB & COX 등 당시 이름 있는 설계 용역회사를 방문 조사한 결과 미화 860만$에서 960$ 선으로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당시에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에 비해서 설계에만 1천만$이나 소요되는 군함 건조사업을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할 수 있는 여건은 못되었다. 조사결과를 청와대에 보고한 후 더 이상 진전없이 1975년을 넘겼다.


3. 국내 개발 경위

 나는 1975년 1월 초 약 5년여의 각종 고속정(학생호, FRP보트, FB, PK 등) 개발 건조업무를 마치고 해군본부 조함과장에 부임하였다. 부임하자마자 대두된 주력 사업은 중형 고속정 PKM (99년 6월 백련도 근해에서 있었던 북한해군과의 교전에서 주역을 맡은 150톤급 고속정)개발과 구축함 개발 사업이었다. 1975년 7월 방위세법이 발효됨으로서 그간 방위성금에 의존하던 율곡사업이 활기를 띠게 되고 이를 계기로 해군은 노화된 주 세력인 대형 함정들을 교체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전투함을 설계할 수 있는 기술진을 확보해놓지 못했고 민간 조선소에서도 시설과 건조기술이 없는 상태였다. PKM은 자체에서 설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한국형 구축함의 설계는 외국에서 구입해 와서 현대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혀있었다.

 하루는 함정차감을 방문, 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우리 해군이 기본설계를 하고 현대에서 건조할 것을 조심스럽게 구두로 건의했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리라는 아주 냉랭한 반응이었다. 나의 뜻을 청와대에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어느날 문득 한가지 방법이 생각났다. 선박연구소를 이 사업에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즉시 선박 연구소 윤정읍 소장을 만나 당시 이 사업의 개요와 추진되고 있는 현황을 설명하고 선박연구소도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청와대를 설득시켜 이 사업을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했다. 윤 소장은 기꺼이 동의하였다.

 1976년 2월 초 미국의 JJMA(JOHN.J.MCMULLEN ASSOCIATED)사 부사장 일행이 한국 해군의 구축함 건조사업 이야기를 듣고 서울을 방문, 설계비 4,484,000$를 제시하였다. 약 20일 동안 국내에서 체류하면서 해군과 현대조선소를 방문하고, 수 차례의 회의를 가진 다음 1)설계비 4,360,000$, 2)설계비 세부내역 제시불가, 3)함정의 성능보장 불가 등 세가지 조건만 제시하고 귀국해 버렸다. 4월 중순 현대는 미국의 JJMA사에 설계용역을 주어 사업을 추진코자 설계비 1천만달러가 소요된다는 계획안을 제출해왔다. 조함과에서는 현대가 제출한 설계비 1천만달러에 대하여 그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해군 율곡사업단의 지시를 잘 모르겠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해 버렸다.그 동안 수 차례 JJMA사의 부사장 일행과의 회의 결과 이 회사는 군함 설계 실적이 없고, 일 천만$ 이라는 거액의 설계비를 지불하는데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율곡 사업단에서는 현대의 요구를 아무런 수정도 없이 그대로 반영한 설계사업 계획서를 작성, 국방부 6인 위원회에 상정하였다. 이 안은 청와대까지 올라갔으나 청와대에서는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76년 5월 18일이었다. 선박 연구소장의 활동이 빛을 본듯 하였다. 나는 매우 기뻤다. 어쨌든 구축함 설계를 해군이 주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해군 지휘부는 해군의 숙원이던 신형구축함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하여 5월 말 기존 구축함을 개조하는 문제, 그리고 PCE(초계함)급 전투함 9척을 건조하고 노후된 구축함을 교체하겠다는 해군의 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7월 중순부터 구축함 건조사업은 다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설계는 외국에서 구입하고 건조는 현대조선소가 맡는 현대의 주장과 기본설계는 해군이 상세설계와 건조는 현대가 맡는 나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었다.
 

 8월 중순 현대와 JJMA간의 설계사업 가계약을 위하여 현대조선의 정문도 사장과 실무진 일행이 뉴욕에 있는 JJMA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일의 성질상 당연히 JJMA사 측에서 계약협상팀을 한국에 파견해야 할 경우인데도 현대 측이 뉴욕까지 출장을 가게 되었다. 해군은 그냥 팔장을 끼고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입장이라, 조함과장과 법무관에게 감독관 자격을 주어 동행시켰다. 8월 11일부터 4일간 양사 사장이 회동, 계약서 초안이 완성되었다. 그 내용을 검토한 결과 조금도 개선된 것이 없었다. 즉 가장 중요한 속력, 선체진동, 복원력 등의 성능 보장과 건조공정에 맞는 자재 구매사양 및 도면 등을 적기에 공급한다는 의무조항은 누락되어 있었다. 나는 협상결과를 상세하게 참모총장께 보고하고는 8월 17일~ 18일 미 해군성 신조함 담당관 실을 방문 JJMA사의 전투함 설계 경험과 능력에 관하여 문의하였다. 담당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당신이 길을 가다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나의 사무실에서 공식적인 질문을 하니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GIB & COX 사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 그 회사는 경험도 많고 능력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뉴욕으로 돌아와서 이틀동안 현대와 JJMA사 간에 합의한 계약내용, 특히 성능보장문제에 대하여 개선토록 설득했으나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8월 22일 귀국했다.

 8월 27일 참모차장께 출장 결과를 보고한 후, 설계 문제에 관하여 1)현대와 JJMA사 두 회사 모두 전투함 설계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2)현대가 설계를 외국에서 구매하면 된다고 하는데 군함설계는 기성품이 아니고 해군의 작전소요와 건조예산에 맞춰 설계되어야 한다. 3)이 요구 조건에 맞는 설계가 이루어지는지 감독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작전소요 외에도 설계에 필요한 자료들을 적기에 공급해야 하는데 해군의 실정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4)설계된 함정의 성능에 대한 비밀을 유지할 수 없다. 5)설계비가 비싸다. 이런 많은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가 책임을 지고 기본설계를 하겠다고 보고하였더니 나의 뜻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튿날 청와대 오원철 제2경제수석을 방문 오 수석의 동의를 얻고 선박 연구소 팀의 참여문제까지 해결했다.
 
 9월 3일 참모총장께 출장결과 보고가 있었다. 8월 27일 참모 차장께 보고한 내용을 그대로 보고하고 본 사업의 기본설계를 해군이 주관할 것을 건의하여 참모 총장의 승인을 받았다. 그 동안 다른 일은 제쳐놓고 구축함 설계추진 방향 결정에만 몰두한 결과 힘들고 벅찬 일을 성취하였다. 매우 기뻤다. 그러나 약20여일 지난 9월 14일 현대는 정주영 회장을 내세워 약 1년여에 걸쳐 설계를 외국에서 구매하겠다던 주장을 포기하고 해군의 지원하에 현대가 설계를 맡겠다고 나서 총장의 동의 얻었다. 상선의 기본설계 능력도 없으면서 군함의 기본 설계를 하겠다니 참으로 용감무쌍한 제의였다. 결과적으로 JJMA사가 설계를 맡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9월 24일 미 해군 고문단장은 정식으로 항의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내용인 즉 기술도 경험도 없는 기술진을 가지고 어떻게 군함을 설계할 것이냐고 상당히 강한 투로 참모총장으로 하여금 결심을 바꾸도록 요구해 왔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여건상 결심을 바꿀 수 없음을 통고함으로서 일단락 되었다.

 10월 중순 설계사업 집행 계획서(약칭 재가서)가 완료되었다. 설계비 650만$(상세 설계 포함), 집행 방법은 현대와 도급 계약하도록 되어있었다. 10월 16일 본 재가서는 국방부 10인 위원회를 거쳐 12월 24일(금)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 재가 내용은 1)기본 설계만 할 것. 2)계약은 정산제로 할 것. 이 두가지 단서가 추가되었었다. 이 조항들은 사업을 집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즉 해군이 설계 업무를 총괄함으로서 해군의 요구 사항을 설계 비용과 관계없이 설계에 반영 혹은 삭제할 수 있고 불필요한 인력 투입, 출장, 모형시험 등을 배제할 수 있으며 특히 외국인 기술자 기용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통념상 정산제는 발주자와 수주자가 공모하면 예상외로 비싸질 수도 있지만, 이리하여 우리 나라 최초의 구축함 건조사업은 약 1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서 자력으로 추진토록 결론이 나고 사업명 율곡 571사업으로 제1차 율곡 기본계획에 포함됨으로서 순조로운 사업 집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출처-'1970년대 해군의 조함사업' 엄도재 해군준장(전) )




P.S) FFK의 기본설계에 관한 글부터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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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2/01/01 10:41 # 답글

    우여곡절 많고 지금도 혹사당하는 울산급 이야기군요.
  • 식빵스러움 2012/01/01 12:51 #

    2012년이 되어 33살을 먹은 '울산함'...동생들은 하나둘씩 퇴역하는데 아직도 목포 3함대사에 배속되어 바다를 지키고 있습죠..
  • band 2012/01/01 14:05 # 삭제 답글

    좋은글 잘봤습니다.

    해군야사집에서 봤던 내용과는 확실하개 좋은글입니다.

    울산은 90년대에 뜯어붇느냐(?) 들어간 것과 시간이 많으니 그만큼 더(?) 뽑아먹어야 갰죠.
  • 식빵스러움 2012/01/01 15:21 #

    감사합니다.(물론 직접쓴글은 아니지만.ㅋ)

    FFK울산함급...지나친 포덕화, 대공능력부족, 고속선형에서 오는 함 피로도 등 논란도 있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90년대부터 DDH가 나오게된 기술적 기반을 축척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 겠지요.
  • 信念의鳥人 2012/01/01 15:26 # 답글

    문제는 저 울산급이 자기 후배인 포항급 동해급은 퇴역중인데, 언제 퇴역할지 앞이 안보인다는것(...)

    ps: 그래도 울산함은 3함대 예하로 뺐다가 현재는 거의 교육사 소속으로 바뀌어서 훈련함 용도로 쓰인다 하죠.
  • 식빵스러움 2012/01/01 15:32 #

    말년에는 좀 편히 지내다가 퇴역후 전시되었으면 싶습니다.(용산전쟁기념관 앞마당에 올려두어도 정말 부왘!!할텐데 말이지요~ㅋㅋ)
  • 드레이크 2012/01/01 15:42 # 답글

    ㅇㅅㅇ 한국 해군 건함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좋은 글 이군요 ㅎ 링크 신고드립니다
  • 식빵스러움 2012/01/02 13:36 #

    감사합니다~
    어서 FFX 인천함이 전력화되고 후속함들도 전력화되서 울산함도 편히 쉬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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