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공대지유도탄사업 방향전환? 밀리학개론


(한국해군의 P-3C 장착되어 선행연구된 '해성' 함대함유도탄/ 사진출처- APFSDS(임성진)님)


 최근 내일일보 기사로 장거리공대지유도탄사업이 1차분은 타우러스 도입을 적극검토하면서 2차분은 국내연구개발로 갈 계획으로 사업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 전쟁 초기 북핵시설 등 핵심전략표적을 정밀타격하기 위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구매대상으로 독일제인 타우러스(TAURUS)가 본격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미국제인 재즘(JASSM)은 사실상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방사청 관계자는 "언제 올지 모르는 재즘의 수출허가서(E/L)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며 "타우러스 단독으로 하는 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타우러스 도입의 타당성 검토 용역을 한국국방연구원에 맡길 것을 검토하고 있다. (중략)

 국방부는 1차로 200기에 가까운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국외 도입한 뒤, 2차 도입분은 2014년부터 4년간 1630억원을 투입해 국내연구개발로 확보할 계획이다. 기술이전에 있어서도 독일의 타우러스가 미국의 재즘보다 유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500km-1톤' 탄도탄 2016년 실전배치 / 내일신문/ (링크)]


 그래서 이와 관련하여 이전 짤막한 자료 하나...





[출처- 2010년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김장수의원 서면자료]


 김장수 (전)의원이 제안했던 3가지 방안 중 마지막 3번째 방안에서 JASSM 대신 타우러스가 들어가면 현재 검토되고 있는 방안이 되는 듯 하네요.~

과거사례를 통하여 본 함정설계의 교훈 (Judging the Good from the Bad) 밀리학개론


 USNI(U.S. Naval Institute)가 발행하는 'Naval History Magazine' 2012년 8월호에 실린 'Judging the Good from the Bad(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판단하기)'라는 제목의 글로서 (해군관련 밀덕의 본좌급인) 노먼 프리드먼(Norman Friedman) naval analyst가 작성한 글 입니다. 글은 성공적인 함정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미국해군과 영국해군의 함정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쓰여졌습니다. 매우 잘 쓰여진 글이라 생각하여(물론 노먼 프리드먼이 관심있게 본 관점을 거부하는 사람들 역시 많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글이라 보여) 올려봅니다.

(Vasa ship in Stockholm)


[군함에 있어서, 큰 것은 보통 더 좋다. 그리고 성공적인 함정들의 대부분은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적응해나갈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저 쓸만한 함정이 아닌 훌륭한 함정을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해상의 실패작으로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고, 미운 오리새끼였던 함정을 해양의 백조로 발전시킨 요인은 무엇인가? 만약 스톡홀름에 간다면 너는 고전적인 실패작을 볼 수 있다. 첫 항해에서 항구를 벗어나기도 전에 침몰한 바사(Vasa)를 말이다. 바사는 후에 복원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바사의 실패로부터 조선공학자들은 재앙을 피하는 법을 많이 배웠지만, 실패집단들은 더욱 미묘해졌다. 좋거나 나쁜 것은 보는 관점에 달려있다. 함정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그 기간은 30년 또는 심지어 50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나 잘 견디는가?

 아마도 함정을 판단하는데 있어 최상의 기준은 그들이 환경의 변화과정에서 얼마나 잘 생존할 수 있는가이다. 이 변화는 단지 기술의 변화뿐만 아니라 세계의 변화에 있어서도 말이다. 냉전시기 동안 기술은 변화한데 반하여 지구적 현상은 고정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1985년의 세계는 1955년 심지어 1950년의 세계로 인식할 수 있는 정도였다. 냉전이 끝났을 때 억눌려 있던 변화는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12년의 세계는 2000년의 세계와 정말로 다르다. 지구적 위협은 변화하고 있고, 해군의 임무 역시 그렇다.


 애틀랜타 vs. 디도 (Atlanta vs. Dido)

 2차 세계대전은 성공, 보통, 실패에 관한 함정설계의 연구를 시작하기 좋은 장소이다. 전쟁동안 기술과 해양전쟁술 모두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1939년에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보였던 것이 구식이 되었고, 1945년에는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유사한 관점을 가졌지만 다른 해군인 미국 해군과 영국 해군의 비교는 이러한 사실을 강조해준다.

 순양함은 두 국가 모두에서 많이 활동했다. 1930년대 후반 미국과 영국 해군은 대공/대함 목적의 양용포(dual-purpose gun)로 무장한 경순양함을 건조했다. 미국은 애틀랜타(Atlanta)였고 영국은 디도(Dido)였다. 두 함정은 보통 대공순양함으로 불렸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꼭 그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주로 구축함전대와 같이 활동하면서 구축함에 대한 공격이 예상되는 대형함정에 대항하여 구축함을 지원하는 것으로 상정되었다. 영국인들은 미국인들보다 순양함의 크기를 제한하는데 더욱 사로잡혀 있었고, 함정의 비용 역시 같았다. 또한 영국은 미국의 5인치 포보다 더 무거운 5.25인치 양용포를 선택했다.

 비교적 무거운 5.25인치 포는 주로 전함의 부포로 선택되었다. 이는 어뢰 공격을 위하여 접근하는 적 구축함을 차단하기 위함이었지, 항공기 공격에 대응하여 재빠르게 사격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5.25인치 양용포는 미국의 5인치/38구경장 양용포보다 많이 느렸다.

 사실 영국은 5.25인치 양용포가 너무 무겁고 대공화력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항공모함은 대공무장으로서 대신에 4.5인치 포로 무장했다. 그리고 영국의 순양함들은 4인치 대공포를 탑재하였다. 소형 함정의 크기와 무거운 함포의 조합은 불행한 결과를 낳았고 전쟁 중 건조된 이후의 디도급 순양함들은 5.25인치 2연장 함포 5문 중 1문을 희생하여야 했다. 사실 이 기간동안에 영국의 순양함들은 더욱 강력한 대공무장을 위하여 포탑(turret) 하나를 포기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희생은 전투 대형의 구역방어에 기여하기보다는 주로 자신을 향하는 항공기에 대응하여 순양함을 방어할 목적의 경량 대공포를 주었다. 아마도 대공함정의 가치에 있어서 한가지 기준은 다른 함정들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형 대공포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경량 대공포의 비율이었다.

 미국의 애틀랜타급 경순양함은 대략 6000톤의 배수량이었다. 그들은 디도급보다 상당히 경량의 대공화력을 가졌고 그들은 자신을 방어하기에 충분한 경량 함포를 탑재하기 위하여 무거운 중형 함포들을 희생해야만 했다. 그들은 5인치/38구경장 2연장 함포 8문을 탑재하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그것은 미 해군의 어떤 순양함보다도 항공모함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될 만큼 많은 5인치 포를 탑재한 것이었다. 애틀랜타는 미해군의 다른 신형 수상전투함들과 마찬가지로 구축함을 지원하는 것 대신에 태평양함대에서 핵심 공격전력이 된 항공모함을 방어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였다.

 애틀랜타급 순양함은 새로운 역할을 위하여 꼭 필요한 레이더 장비와 더불어 중형의 자함방어 포대를 설치할 수 있는 충분한 예비 안정성을 가지고 있었다. 애틀랜타는 두 가지의 행운(전쟁 중 최고성능의 양용포와 훌륭한 사격통제체계)이 따랐고, 이 행운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기가 컸다. 미국 해군은 전쟁기간 동안 개량된 애틀랜타급 순양함의 건조에 만족하였다.

 애틀랜타급 순양함이 디도급 순양함과 달리 성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더 큰 사이즈는 미 해군이 태평양에서 겪은 새로운 유형의 전쟁양상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함정들은 전후의 새로운 기술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개장 방안이 고려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형 함포를 탑재하려는 디도급의 개량 시도는 이를 위한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을 때 단념되었다.

(U.S. Navy Atlanta class)


 에섹스 vs. 일러스트리어스 (Essex vs. Illustrious)

 미국과 영국의 군함들에 있어서 일관된 경향이 있다. 영국의 설계자들은 그들의 함정의 크기를 줄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그들이 워싱턴해군조약의 의무를 강요받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그들은 크기를 비용과 동일시 했고, 설계자들은 '더 많은 함정을 가지는 것이 더욱 좋다'라는 것을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설계기록들은 더 큰 함정이 요구되어지는 방향으로 기술이 변화할 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이는 특히 항공모함의 경우에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1930년대부터 항공기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는 점은 명백했다. 미국의 항공모함 설계자들은 행운이 따랐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럽의 전쟁발발로 인하여 항공모항의 크기를 제한하던 해군조약이 파기된 이후 에섹스급의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국 항공모함 설계에 있어서 걸작은 장갑 갑판을 가진 일러스트리어스였다. 항공모함 설계자들은 항공모함이 위험의 소지가 매우 크며 심각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식은 항공갑판을 관통하여 폭탄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사실 일러스트리어스는 전적으로 장갑화된 항공갑판이 아니라 장갑화된 격납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장갑갑판은 상당한 차이를 만들었다. 특히 대전말기에 카미가제 방식의 공격에 있어서 말이다.

 디도의 경우와 같이 핵심은 "그러나"에 있다. 1936년 일러스트리어스가 설계되었을 때 영국해군은 항공모함의 전투기들이 폭격기를 물리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묵살했다.(이는 시각적 경보시간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으며, 밀폐되고, 방호된 격납고에 집어넣을 수 있는 제한된 숫자의 공격기를 탑재하기로 흔쾌히 결정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건현의 감소로 내항성이 저하되었으며 짧고 느린 선체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함정이 설계되던 중 첫 레이더가 테스트 중에 있었다. 레이더는 항공모함의 전투기들이 항공모함을 방어할 수도 있다는 징조를 주었고, 항공모함들은 더 많은 항공전대(Air group)들을 가져야 했다. 이러한 점이 명백해짐에 따라 일러스트리어스의 후속함들은 복층의 격납고를 가지는 것으로 재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대가는 이후 등장한 신형 항공기 탑재를 어렵게하거나 불가능하게한 격납고의 낮은 상부공간으로 나타났다.

 미국 해군은 대형의 에섹스급 항공모함을 건조하였다. 이 항공모함은 비장갑화되어 개방된 구조의 격납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격납고 갑판은 장갑화되어 있어서 항공갑판에서 무슨 일 발생하더라도 함정의 침몰을 어렵게 만들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의 항공모함의 경우 영국의 항공모함보다 거의 3배 가까운 항공단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이 대규모 항공단은 태평양에서 벌어진 새로운 전쟁유형에 완벽하게 적합했다. 더불어 개방된 구조의 격납고는 종전 후 현대화 개장을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었다. 영국은 함대 항공모함 6척 모두를 개장할 계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 척만이 현대화 개장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장갑화된 격납고 부분으로 인하여 그 개장작업이 장기간의 악몽이 되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국 해군은 영국과 같은 유형의 소형 항공모함으로는 절대로 태평양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다. 1941년 그들이 HMS 일러스트리어스를 처음 보았을 때, 미국 장교들은 매우 감탄했고 장갑화된 비행갑판을 원했다. 마침내 그들은 미드웨이(USS Midway) 항공모함에서 장갑 갑판을 얻었다. 그러나 이는 미국 해군이 23000톤의 일러스트리어스나 27000톤의 에섹스가 아닌 45000톤급의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것을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크기는 함재기가 극적으로 변화한 1970년대까지 몇몇 에섹스급 항공모함들이 해군 항공의 최일선에서 유지할 수 있게 한 유연성을 가져다 주었다. 예를 들어 1939년에 전형적인 공격기는 12000파운드의 적재중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1960년에 A3D 항공기는 대략 70000파운드의 적재중량을 지녔다.

 크기가 상당히 중요한 사실이라는 점은 전혀 새로운 교훈이 아니었다. 1921년 워싱턴 해군회담 이후 미국 해군은 2 척의 미완성된 전투순양함을 렉싱턴(Lexington CV-2)과 사라토가(Saratoga CV-3) 항공모함으로 개장하는 것을 결정했다. 이들 대형 함정들은 1920년대 중반까지 가장 대형의 항공모함이었고, 그들은 흰코끼리(white elephant - 돈만 많이 들고 쓸모없는 물건의 비유적 표현)라고 조롱받았다. 해군전쟁대학(NWC)의 분석은 더 많은 소형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것이 더 좋은 방안이라고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이런 유형의 함정들은 더 많은 항공갑판을 제공해주어서 전체적인 항공기 운영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레인저(Ranger CV-4)는 이러한 이론에 기초하여 설계 및 건조되었다.

 레인저가 건조되고 있던 중, 2척의 흰코끼리들이 전력화되었고 크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경우에 있어서 함대의 전체적인 항공기 숫자는 각각의 개별적인 항공모함에 탑재된 항공기 숫자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 곧 명백해졌다. 왜냐하면 후자는 미국의 항공모함의 항공전술부대인 항공단(Air wing)을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크기는 속도와 생존가능성을 주었다. 레인저함은 그렇지 못했지만 렉싱턴과 사라토가는 태평양에서 싸웠다.(미해군은 레인저함이 태평양의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겨 대서양의 작전에 주로 투입하였다.) 보다 대형의 항공모함들은 실패작이 아니었다. 그들은 백조가 된 미운오리새끼였다.

 미국 해군이 2차세계대전 동안 건조한 대다수의 함정들은 '큰 것이 더욱 좋다(bigger-is-better)'는 교훈을 강화시켰다. 설계자들은 항상 구체적인 필요조건을 채울 수 있는 범위에서 가능한 한 타이트하게 패키지를 만들길 원했다. 다양한 이유로 1941년까지 미해군은 다른 나라들 보다 더 큰 패키지를 필요로 했다. 전쟁동안 영국 함장들은 유사한 대형의 함정들을 가지길 희망한다는 글을 주기적으로 썼다. 그리고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영국은 미국과 크기가 유사한 구축함들을 설계 건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설계당국의 일반적인 반응은 미국의 함정들은 그들 설계자들이 무능했기 때문에 그저 커졌을 뿐이라고 했다. '미국의 설계자들은 느슨하고(loose) 값 비싼 함정들을 제작했다'고 말이다.

 태평양에서의 충돌이 갈수록 항공모함 위주의 전쟁으로 간 것 처럼 해상의 세계는 전쟁기간 동안 변화했다. 이는 심지어 종전 후 미사일, 제트항공기, 중량의 전자장비 등과 같은 신기술의 등장을 통하여 더욱 변화하였다. 미국 해군은 전쟁기간동안 그들의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들이 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대형이었기 때문에 이 변화들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절대로 실패작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니 돌이켜보면 그들은 틀림없이 백조였다.

 단지 현실적인 비판은 잔잔한 태평양에서의 작전을 주로 고려하여 설계된 미국의 함정들이 냉전의 주무대였던 거친 북해를 초계하기에 부적합했다는 것이다. 영국은 내항성에 있어서 더 좋은 선체 유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잘 설계된 전투함들 대부분은 새로운 기술들을 수용하기에 부적합했고, 결과적으로 영국 해군의 규모는 필요한 것 보다 빠르게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두 국가들은 1944년에 함대공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의 미사일은 테리어(Terrier)와 탈로스(Talos)였고, 영국의 미사일은 씨슬러그(Seaslug)였다. 미해군은 테리어 미사일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배치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미사일을 보스턴(Boston CA-69)과 캔버라(Canberra CA-70)라는 2 척의 중순양함에 설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자신들의 순양함이 너무 작았기 때문에 씨슬러그 미사일의 빠른 배치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 목적을 위하여 거대한 신형 순양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전력화할 기회를 상실하였다. 제1해군경인 Louis Mountbatten은 미사일을 대형 구축함에 간신히 집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매우 독창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Royal Navy Illustrious class)


 전후의 구축함과 프리깃(Postwar Destroyers and Frigates)

 아마도 가장 최근에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한 것은 최근에 퇴역한 미국의 스프루언스급(Spruance class) 구축함일 것이다. 스프루언스가 건조되었을 때 이는 순양함 크기의 함정에 프리깃 수준의 무장을 한 터무니 없는 조합의 함정으로 보였다. 그들이 대형함이 된 이유는 초기 계획상 단일선체를 기반으로 하여 미사일(대공)구축함과 대잠구축함 모두를 건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2개로 분리된 함형을 건조하는 것보다 더욱 저렴하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미사일구축함이 건조되기 전에 중단되었다. 단지 4척의 스프루언스급 미사일구축함만이 이란해군을 위하여 기공되었고, 이후 키드급(Kidd class) 구축함으로 미해군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스프루언스의 선체 크기는 소형함정에 설치할 수 없는 상당한 양의 추가적인 무장을 수용할 수 있었다.

 대형의 스프루언스 선체가 가치있는 것이라는 첫 신호는 타이콘데로가급(Ticonderoga class) 순양함으로 불린 이지스 미사일 체계를 탑재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동시기에 이는 해상에 이지스 체계를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적 방안이었고 다른 대안은 더 크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싼 핵추진 순양함이었다. 이는 미운 오리새끼의 첫 승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스프루언스급 구축함 전방의 대잠발사기는 토마호크 함대지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64 셀의 수직발사기로 교체될 수 있었다. 스프루언스급이 퇴역할 때까지 그들은 상당한 함대지 공격 화력을 지닌 다목적 구축함으로서 가치가 있었다. 이 역할은 이후 스프루언스급을 대체하는 것으로 상정된 줌왈트급(Zumwalt class)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다.

 스프루언스급을 성공적으로 건조한 미해군의 수상전투함들은 대부분 tight  vs. loose(빡빡한 대 느슨한) 설계에 있어서의 실험으로 간주되었을지도 모른다.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Oliver Hazard perry class) 프리깃은 함정의 크기를 제한하면서 의도적으로 가격을 통제한 함정이었다. 이들은 주로 air-defense gap을 채울 계획이었고, 스프루언스급에 탑재된 장거리 소나를 희생하는 대가를 치렀다.

 이 프리깃들은 냉전시기에 유용했지만,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페리급이 1971년에 계획되었을 때 냉정은 삶의 고정된 사실로 보여졌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 냉전은 끝났다. 대부분의 나토(NATO)국가들은 냉전의 임무에 집중되어져 있었다. 대잠전(ASW)과 방어적 대기뢰전(MCM)으로 말이다. 냉전이 끝났을 때 이 두 임무 모두 중요시되지 않게 되었다.

 미국 해군은 호송선단 보호에 특화된 녹스급(Knox class) 프리깃을 폐기했다. 그리고 곧 대부분의 페리급도 버려졌다.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탑재한 미사일 체계를 가진 잔존 함정들도 이 미사일 체계가 현재의 팝-업(pop-up) 위협에 비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져 제거되었다. 만약 이 글이 1980년에 쓰여졌다면, 페리급과 녹스급은 백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실패작처럼 보인다. 미국의 대형 구축함과 순양함들은 진정한 백조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국 해군이 1980년대에 지지한 타격전(strike warfare) 유형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크기는 이득이 된다.
(U.S. Navy Spruance class)


 속도의 매력 (The Allure of Speed)

 다른 영역에 있어서, 2차세계대전과 1970년대 미국 해군은 작고 빠른 전투함에 투자했다. PT보트와 페가수스급 수중익선(Pegasus class PHM)으로 말이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정말로 빠른 함정이 쏜살같이 뛰쳐나와 적을 공격하고 적이 화력을 돌려주기 전에 달아날 수 있다는 이론에 따라 속도는 최우선의 미덕이었다. 예를 들어 소비에트와 중국은 고속의 미사일보트와 어뢰정 집단을 건설했다. 이는 백조인가, 혹은 실패작인가?

 미국 해군은 2차세계대전에서 그들의 대규모 PT함대가 적합하지 않았다고 여겼고, 이후 거의 모든 PT보트를 즉시 페기하였다. 공식적인 의견은 PT보트가 거의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PT보트들은 솔로몬 제도에서 일본의 바지선 교통망을 효과적으로 차단했지만, 이 임무는 빠른 속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 PT보트는 상대적으로 조잡하며 위험하다는 결과를 낳았다. 필리핀이라는 다른 경우에 있어서 PT보트들은 그들의 주요 전투함 목표를 공격하는데 실패했다. 이는 아마도 작고 요동치는(bouncing) 보트에서의 효과적인 사격이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페가수스급 수중익선(Pegasus class PHM)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들은 계획된 30척 중 단지 6척만이 건조되었고, 건조된 함정들도 중기(mid-life)에 폐기되었다. 더 뚜렷하게 말하자면, 해외 구매자들을 찾을 수도 없었다. PHM은 거친 바다에서도 속도를 유지하면서 작전할 수 있는 혁신적인 익면조종(poil control) 형태를 지녔다. 그래서 이 고속정들은 꽤 매력적이었을 텐데도 PHM을 건조했고 관련기술의 권리를 소유한 보잉은 이와 유사한 수중익선을 원하는 어떤 구매자들도 찾을 수 없었다. 서방에서 어느 누구도 이러한 매우 빠른 속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는 뜻 밖의 일이 아니였다. 언제나 빠른 속도는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설사 그것들의 비용이 어느정도 적당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그리고 이는 단지 비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2차세계대전 이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초고속 구축함을 건조하는데 있어서 서로 경쟁했는데, 이는 건조사들이 제인함정연감(Jane's Fighting Ships)에 시험속도를 광고할 정도였다.

 1945년 미국 태평양함대에서 있던 프랑스 연락장교는 이러한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썼다. 고출력 기관은 너무 다루기가 까다롭고 지나치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며, 너무 많은 연료를 필요로 했다. 전술적으로 이는 아무런 이점도 없었다. 프랑스 해군참모는 이 의견에 귀 기울였고 종전 후 쉬르구프급(Surcouf class) 구축함의 고속 성능을 위한 연구는 폐기되었다. 항공기가 함대의 핵심이 되었을 때, 전투함들은 단지 항공모함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의 속도를 필요로 했을 뿐이다. 어떠한 함정도 공격용 항공기나 헬기를 회피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를 낼 수 없다.
(U.S. Navy Pegasus class PHM)


 잠수함에 있어서 크기의 가치 (Value of Size in Subs)

 잠수함들은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잠수함은 그들의 수중 용적이 중량과 정확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설계하기가 특히 어렵다. 아마도 가장 성공적인 미해군의 잠수함은 2차세계대전 동안의 함대 잠수함(fleet boat - 구체적으론 Gato급 잠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잠수함들은 적의 상선대를 파괴하면서 더불어 미 함대를 위한 정찰활동을 수행하는 그들의 설계된 역할에 가장 효과적이었다. 아마도 더 소형의 잠수함이었다면 그 와 같이 잘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함대 잠수함(fleet boat)들은 이 글에서 의미하는 기준(환경과 기술의 극적인 변화과정에서의 유연성)을 충족했다. 그들은 현대화 개장(fleet snorkel과 Guupy program -Greater Underwater Propulsion Power Program)에 적합하였고, 레이더 전방초계함(radar picket)과  전략미사일 운반체라는 새로운 임무에도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과정에서 그 잠수함들은 크기가 가치있는 점이라는 미해군의 견해를 입증했다. 그 시기에 다른 해군들은 크기와 관련하여 함대 잠수함(fleet boat)을 조롱했다. 예를 들어 영국은 더욱 경제적인 잠수함을 선택했다. 비록 확실하지는 않지만 영국 해군의 잠수함들은 제한된 유럽해역에 있어서는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더욱 현대적인 잠수함들에 관한 평가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인 교훈은 크기는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덜 성공한 핵추진 잠수함은 비용절감을 위해 극단적으로 크기를 줄인 것들이었다. 툴리비(Tullibee SSN-597)와 스케이트(Skate SSN-579) 잠수함이 말이다. 단연 최고는 아마도 로스 엔젤레스급(Los Angeles class)잠수함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신축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토마호크 미사일을 추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욱 타이트하게 설계된 잠수함들은 상당한 수량의 UUV(Unmanned Underwater Vehicle)들을 수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중요한 역할은 당시 잠수함들이 건조되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많은 분석가들은 로스 엔젤레스(SSN-688) 잠수함이 지나치게 크며, 잠수함의 설계가 더욱 유체역학적인 선체와 상대적으로 저출력 동력기관의 조합이 아닌 거대한 크기의 신형 동력기관을 가짐으로서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하이먼 리코버(Hyman Rickover) 제독의 고집스러운 주장에 좌우되었다고 비판했다. 더욱 큰 선체 크기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던 컴팩트한 선체에 집어넣기가 곤란한 다른 부분의 향상을 촉진시켰다.
(U.S. Navy Los Angeles class)


 함정 설계의 교훈들 (The Lessons of Ship Design)

 함정 설계에 관하여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적어도 수상함에 있어서 하나의 교훈은 속도의 예를 들어 극단적인 성능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적의 무장은 보통 함정보다 더욱 빠르다. 약간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희생은 식별을 어렵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후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를 낳게된다. 또한 처음에는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크기는 값어치를 한다. 보다 큰 함정일수록, 변화하는 세계를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함정의 현대화에 있어서 보다 큰 기회를 가진다.

 해군은 규모를 필요로 한다. 보통 이는 함정들이 가능한 한 저렴하게 건조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숫자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미 해군이 유지할수 있는 함정의 숫자는 미 해군이 매년 건조할 수 있는 숫자에 함정이 생존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연수를 곱한 값이다.(예를 들어 함정이 생존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기간이 20년이고 연간 건조수량이 4척이라면 총 80척을 유지가능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생존가능성은 함정이 바다의 혹독함을 얼마나 잘 견딜 수 있으며, 함정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혹독함을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만약 더 큰 것이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기 더 적합하다는 의미라면, 숫자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매년 좀 더 적은 숫자의 함정을 건조하지만 대형의 함정을 건조하는 것이다.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대형 함정들은 더 많은 승조원들을 필요로 하고, 매년 보다 적은 숫자의 함정들을 건조하는 것은 활동할 수 없는 함정들을 대체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전체적인 교훈은 남는다. 단지 현실적인 주의사항은 선체 설계와 기계장치(machinery)의 기본원칙이 급속히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특정한 선체나 동력기관이 구식이 된다면 함정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가능한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적이 있었다. 1860년대 영국 해군은 주력함에 있어서 다른 나라들보다 강력한 우위에 있었다. 목제로 된 '전열함'의 많은 수는 오랫동안 예비전력으로 지속되었고 그들은 증기기관으로 개량되었다. 그 다음에 프랑스가 장갑함을 도입했다. 비장갑화된 목제 선체들은 모두 급격하게 구식이 되었다. 영국은 목제 주력함들 일부를 장갑화하기는 했지만 더욱 만족스러운 신형 철제 선체에 집중했다. 영국의 해상 우세를 재건하는 과정은 끔찍한 비용을 초래했고, 영국은 충분한 수량의 철제 전투함을 구매하기 위하여 계획된 대다수의 목제 순양함들을 취소해야 한다고 느꼈다.

 더욱 최근에 있어서 핵추진 잠수함을 위한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의 종말은 미 해군에게 유사한 충격을 주었다. 함대 잠수함(fleet boat)으로 공급되어 2차세계대전후 많은 수로 운용된 주력 잠수함들의 가치는 그들의 수명이 다 되어 폐기되기도 전에 급격히 감소하였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How Can You Tell?)

 오래된 속담에 따르면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너가 함정이 어떻게 그리고 왜 설계되었는지에 관하여 더 많이 알수록, 실패작으로서의 함정들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된다. 또한 성공한 몇몇 함정들이 실제로 얼마나 그러했는지 확신하기도 어렵다. 특정한 설계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 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가 동원령을 내렸을 때, 국가는 건조되고 있던 것이 무엇이던 간에 대량생산을 하려고 한다.

 플래쳐급(Fletcher class)이 미해군의 구축함 유형으로 1941년에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해군은 결국 175척의 플래쳐급 함정들을 가졌다. 그리고 플래쳐 함정은 훌륭한 설계로 나타났다. 평갑판선(flush-deckers/선수루가 없는 함정) 형태가 1917년에 구축함 설계로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해군은 결국 많은 평갑판선 형태의 구축함을 가졌다. 그리고 함정의 설계자들은 실수로 선수루(forecastle)의 가치를 폄하했기 때문에 이 함정들은 훌륭하지 못했다. 특히 거친 북대서양에서 말이다. 많은 전함들이 전간기(interwar)를 거쳐 살아남았지만 이는 그들이 꼭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군축협정이 전간기의 전함들을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들 신조함정의 건설을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명확하게 말해주는 것은 영국해군이 더 느린 R급(Revenge/Royal Sovereign class)전함보다 QE급(Queen Elizabeth class)전함에서 더 큰 만족을 가졌다는 점이다. 또한 이것을 기억해라. 당초 설계시 상정되었던 임무에서 테스트를 받아던 2차세계대전의 전함들이 얼마나 적었는지, 그리고 재앙이 기본설계의 결함때문이 아니라 세부사항으로 인하여 얼마나 자주 발생하였는지 말이다. 과달카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BB-57)는 적의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함정의 프로펠러의 진동으로 인하여 회로차단기가 꺼져버려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능을 상실했었다. 꺼져버린 차단기는 세부사항에 속하는 것인데 반하여, 진동은 설계상의 결함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함정의 기본설계 탓은 아니었다.

 해군 간의 기준을 제쳐두고라도 더욱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해군 내에서 함정들을 비교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다른 해군들은 일반적으로 더욱 다른 상황에서 작전하기 때문이다. 거친 북대서양에서 오랫동안 작전해왔던 영국 해군은 냉전동안의 미국 해군보다 내항성을 가진 선체설계에 있어서 더욱 우수했다. 그리고 내항성 향상의 필요성은 알레이 버크(Alreigh Burke)함정의 특이한 선체 형태를 낳았다.

 미국 해군 내에서의 비교 역시 어렵다. 왜냐하면 거의 같은 임무를 가지고 다르게 설계된 함정들을 거의 같은 직급에서 개별적으로 경험한 장교들이 너무 적기때문이다. 비슷한 직급이라는 것은 중요한 점이다. 같은 시기에 같은 함정에 탑승한 소위와 대령은 보통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을 가질 것이다. 게다가 더욱 복잡한 문제는 함정에 탑재된 체계와 무장에 더욱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의 함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함정은 업그레이드된 무기체계를 탑재한 같은 함정보다 기능이 훨씬 나쁘게 돌아갔다.


[출처- Judging the Good from the Bad / By Norman Friedman / Naval History Magazine - August 2012 Volume 26, Number 4 (원문링크)]



 글이 좀 길어서 짤막하게 요약하자면,

 노먼 프리드먼은 영국해군과 미국해군 함정들의 비교와 그 외 다른 분야의 함정들을 비교하였습니다. 노먼 프리드먼이 성공적인 함정설계를 위하여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함정이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와 기술의 진보에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건조 당시의 상황만을 고려하여 타이트하게 설계된 함정보다 좀 더 크고 여유롭게 설계된 함정들이 시간과 기술의 변화에 상대적으로 잘 적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함정의 속도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해상전투는 항공기 중심으로 변화하였고 다른 부분을 희생하면서 함정의 속도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함정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봤자 항공기의 시각에서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해군에게 있어서 함정의 숫자를 논할 때 제한된 금액에서 보다 저렴하게 보다 많은 함정을 건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소수이더라도 더욱 오랫동안 생존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함정들을 건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함정을 설계할 때 초호화판 전투체계와 무장체계를 탑재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래의 변화에 대응가능한 선체를 설계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그것을 위한 한 방안으로서 함정이 보다 여유롭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구요.)

 마지막으로 성공과 실패한 함정들의 비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면 끝마쳤습니다.



PS) 읽고나서 미해군참모총장인 그리너트(Jonathan W. Greenert)가 이전에 말했던 부분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우리는 고정된 능력을 가진 '럭셔리 승용차'로부터 변화하는 페이로드 선택을 다룰 수 있는 신뢰성을 가진 '트럭'을 향하여 이동할 필요가 있다.] -이와관련된 글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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